후집(後集)56장세상 사람들은 오직 ‘나’라는 글자를 지나치게 참된 것으로 아는 까닭에 온갖 기로와 온갖 번뇌가 허다히 일어난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내가 있음도 또한 알지 못하는데 어찌 물건 귀한 것을 알겠는가’ 라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이 몸이 내가 아님을 안다면 번뇌가 어찌 다시 침입하겠는가’라..
후집(後集)55장꽃이 화분 속에 있으면 마침내 생기를 잃고 새가 조롱 속에 들면 곧 자연스런 멋이 줄어드니 산 속의 꽃과 새가 한데 모여 문채(文彩)를 이루고 맘껏 날아올라 스스로 한가롭게 즐거워함만 못하도다.<원문原文>花居盆內(화거분내)하면 終乏生機(종핍생기)하고 鳥入籠中(조입롱중)하면 便滅天趣(..
후집(後集)54장새벽 창가에서 주역(周易)을 읽다가 소나무 이슬로 붉은 먹을 갈며 한낮 책상 앞에서 불경(佛經)을 담론하다가 대숲 다람결에 경쇠를 울리노라.<원문原文>讀易曉窓(독역효창)에 丹砂(단사)를 硏松間之露(연송간지로)하고, 談經午案(담경오안)에 寶磬(보경)을 宣竹下之風(선죽하지풍)이니라.<..
후집(後集)53장많이 가진 사람은 많이 잃는다. 그러므로 부유한 것이 가난하면서도 걱정없음만 못한 것을 알 수 있도다. 높은 곳을 걷는 사람은 빨리 넘어진다. 그러므로 고귀한 것이 천하면서도 언제나 편안한 것만 못함을 알 수 있도다.<원문原文>多藏者(다장자)는 厚亡(후망)하나니 故(고)로 知富不如貧之無..
후집(後集)52장마음에 욕심이 있는 사람은 차가운 연못에도 물결이 끓어 오르니 산 속에서도 그 고요함을 보지 못하고 마음이 텅 빈 사람은 혹심한 더위에서도 서늘함이 일어나니 시장에 있어도 그 시끄러움을 알지 못하느니라.<원문原文>欲其中者(욕기중자)는 波沸寒潭(파비한담)하여 山林(산림)도 不見其寂(..
후집(後集)51장머리카락이 빠지고 이가 듬성듬성 해지는 것은 육신의 시들어짐에 맡겨두라. 새의 노래와 꽃의 웃음에서 본성의 변함없는 진리를 배우도록 하라.<원문原文>髮落齒疎(발락치소)는 任幻形之彫謝(임환형지조사)하고 鳥吟花笑(조음화소)에 識自性之眞如(식자성지진여)니라.<해의解義>머리털이 ..
후집(後集)50장사람의 정(情)이란 꾀꼬리 소리 들으면 기뻐하고 개구리 울음을 들으면 싫어하며 꽃을 보면 이를 가꾸려 생각하고 잡초를 만나면 이를 제거하고자 하니 이것은 다만 형체와 기질로써 사물을 보기 때문이다. 만약 천성의 본바탕으로 이를 본다면 그 무엇이 스스로 천기를 울림이 아니며 스스로 자라나는..
후집(後ㅈ集)49장몸은 매어 두지 않은 배와 같으니 흘러가든 멈추든 완전히 내맡길 일이요 마음은 이미 재가 된 나무와 같으니 칼로 자르든 향을 칠하든 무슨 상관이 있으랴. <원문原文>) 身如不繫之舟(신여불계지주)니 一任流行坎止(일임류행감지)요 心似旣灰之木(심사기회지목)이니 何妨刀割香塗(하방도할..
후집(後集)48장마음이 흔들리면 활 그림자도 뱀으로 보이고 쓰러진 돌도 엎드린 호랑이로 보이니 이 속에는 모두 살기뿐이다. 생각이 가라앉으면 석호(石虎)도 바다갈매기처럼 되고 개구리 소리도 음악으로 들리니 가는 곳마다 모두 참된 작용을 보게 되리라.<원문原文>)機動的(기동적)은 弓影(궁영)도 疑爲蛇..
후집(後集)47장글자 하나 모를지라도 시적 정서를 지닌 사람은 시인의 참된 멋을 터득하고 게송(偈頌) 한 구절 외우지 못하더라도 선(禪)의 묘미를 지닌 사람은 선교(禪敎)의 오묘한 이치를 깨닫는다.<원문原文>)一字不識(일자불식)이라도 而有詩意者(이유시의자)는 得詩家眞趣(득시가진취)하고 一偈不參(일게..
후집(後集)46장봄날의 기상은 변화하여 사람의 심신을 화창하게 한다. 하지만 가을날, 구름 희고 바람 밝으며 난초는 꽃답고 계수나무 향기로우며 물과 하늘이 한빛으로 푸르고 천지 달이 환히 밝아서 사람의 심신을 함께 맑게 해주는 것만 하랴!<원문原文>)春日(춘일)은 氣象繁華(기상변화)하여 令人心神Ɖ..
후집(後集)45장산림과 천석(泉石) 사이를 이리저리 거니노라면 세속의 먼지는 어느덧 사라지고 시서(詩書)와 그림 속에 한가히 노니노라면 속된 기운은 슬며시 없어진다. 그러므로 군자는 도락(道樂)에 빠져 뜻을 잃지 않을뿐더러 또한 항상 우아한 경지를 빌어 마음을 고르느니라.<원문原文>)徜徉..
후집(後集)44장내가 영화를 바라지 않으니 어찌 이록(利祿)의 향기로운 미끼를 근심항며 내가 승진을 다투지 않으니 어찌 벼슬살이의 위험을 두려워하겠는가.<원문原文>)我不希榮(아불희영)이면 何憂乎利祿之香餌(하우호이록지향이)하며 我不競進(아불경진)이면 何畏乎仕官之危機(하외호사관지위기)리오.<해..
후집(後集)43장대나무 울타리 아래에 홀연히 개 짖고 닭 우는 소리 들리니 황홀하기 마치 구름 속 세계와 같고 서재 안에 운치 있는 매미 소리와 까마귀 우짖는 소리 들리니, 바야흐로 고요한 속의 천지를 알겠구나.<원문原文>)竹籬下(죽리하)에 忽聞犬吠鷄鳴(홀문견폐계명)이면 恍似雲中世界(황사운중세계)하..
후집(後集)42장이 몸을 언제나 한가한 곳에 둔다면 영욕과 득실, 그 어느 것이 능히 나를 그릇되게 할 것이랴. 이 마음을 언제나 조용한 가운데 안정시킨다면 시비와 이해, 그 어느 것이 능히 나를 속일 수 있으랴.<원문原文>)此身(차신)을 常放在閒處(상방재한처)면 榮辱得失(영욕득실)이 誰能差遣我(수능차견..
후집(後集)41장속세를 벗어나는 길은 곧 세상을 살아가는 가운데 있으니 반드시 절교하고 세상을 도피해야 할 필요는 없고 마음을 깨닫는 공부는 곧 마음을 다하는 속에 있으니 반드시 물욕을 끊어서 마음을 싸늘한 재처럼 할 필요는 없느니라. <원문原文>)出世之道(출세지도)는 卽在涉世中(즉재섭세중)이니 ..
후집(後集)40장높은 벼슬아치들의 행렬 가운데 명아주 지팡이를 짚는 산인(山人)이 한 사람 섞여 있으면 문득 한결 높은 풍도(風度)가 더해진다. 허나 고기잡이와 나무꾼이 다니는 길 위에 관복입은 벼슬아치가 한 사람 섞여 있으면 도리어 수 많은 속된 기운을 더할 뿐이다. 이에 진실로 짙은 것은 옅은 것만 못하고..
후집(後集)39장갈대꽃 이불 덮고 눈밭에 누워 구름 속에 잠들면 한 방 가득한 밤기운! 댓잎 솔잔 속에 바람을 읊조리고 달을 희롱하노라면 속세의 만장(萬丈) 붉은 티끌 다 떨쳐 지니라. <원문原文> 蘆花被(노화피)에 臥雪眠雲(와설면운)하면 保全得一窩夜氣(보전득일와야기)라 竹葉杯中(죽엽배중)에 吟風弄月..
후집(後集)38장시끄럽고 번잡한 때를 당하면 곧 평소에 기억하던 것도 모두 멍하니 잊어버리고 맑고 평안한 경지에 있으면 지난 날에 잊어버렸던 것도 또한 뚜렷이 앞에 나타난다. 가히 조용함과 시끄러움이 조금만 엇갈려도 마음의 어둡고 밝음이 뚜렷이 달라짐을 알 수 있으리라.<원문原文>)時當喧雜(시당훤..
후집(後集)37장산림은 아름다운 곳이나 한번 집착하면 곧 시장판이 되고 서화(書畫)는 우아한 일이나 한번 탐내면 문득 장사꾼이 되고 만다. 대개 마음에 물들거나 집착이 없으면 속세도 신선 세계요, 마음에 매임이나 집착이 있으면 극락도 고해가 되리라.<원문原文>)山林(산림)은 是勝地(시승지)나 一..